기독교와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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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것]

기독교는 동성애를 죄라고 말한다.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것은 동성애를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을 구원받을 수 없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것은 동성애를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죄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죄다. 남의 것을 탐하고 도둑질하는 것은 죄다.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채 남녀가 섹스하는 것은 죄다. 사리사욕만을 채우기 위해 삶을 사는 것은 죄다. 마음 없이 껍데기만 종교 의식을 행하는 것은 죄다. 등등 상기한 것처럼 동성 간에 에로스라 흔히 일컬어지는 사랑, 혹은 성행위를 하는 것은 죄다.

어떤 죄는 다른 어떤 죄보다 사람이 느끼기에 중해 보이기도 하고 경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죄는 아무리 사람이 보기에 경해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중하지 않은 죄는 없다.
또한 어떤 죄는 더 혐오스럽기도 하고 덜 혐오스럽기도 하고 전혀 혐오스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죄는 기본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이다.
죄가 혐오스럽지만 죄인을 혐오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어떤 죄를 짓는 사람을 보고 혐오감이나 거부감이 드는 것은 개인차가 있고 그렇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죄를 짓고 있는 그 사람이 구원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해서도 안 되며,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도 죄인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죄인이며 앞으로도 죄인이다. 죄를 지었으며 죄를 짓고 있으며 앞으로도 죄를 지을 것이다. 다만 의롭다 칭함을 받은 죄인일 따름이며, 회개와 믿음으로 날마다 삶을 사는 죄인이다. 영화될 때까지.
그러므로 죄인을 혐오한다면 혐오하는 자신조차 혐오의 대상이며 모든 사람을 혐오해야한다.
현세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는 것이다. 1)죄인과 2)의롭다 칭함받은 죄인

예수님이 지금 이 땅에 계셨으면 동성애 성향의 사람들을 사랑하셨을 것이라 말하는 것을 왕왕 보게 되는데, 맞다 사랑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신다는 게 그냥 받아주기만 하고 안아주기만 하는게 아니다. 분명히 질책하실 것이고, 동성애를 버리고(버리려고 애쓰고) 나아오는 자의 집에 가셔서 삭개오에게 하셨던 것처럼 함께 식사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러지 않는 완악한 자들에게는 제사장들 및 서기관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꾸짖으실 것이다.

구원의 복된 소식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것이 어떤 죄를 지은 자든지 상관 없이 말이다. 그가 심지어 살인자라 하여도.
구원의 복된 소식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과 달리 구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는 않다.
확실하고 분명한 한가지는 성경이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사랑하고 부둥켜 안고 있으면 그에게는 구원이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확실하고 더욱 분명한 한가지는 성경이 죄라고 말하는 것들을 죄로 깨달아 인정하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그에게는 구원이 허락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삭개오가 그랬던 것처럼 타인에게 지은 죄가 있다면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죗값을 치를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다른 종류의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처럼 그 죄(동성애)를 지을 수도 있다. 다만 그리스도인은 죄를 회개하고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운다. “내가 그것이 좋다는데..”하며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선과 악의 기준이 ‘나 자신’이 되어 결론 내리지 않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결론은 말씀이고 복음이고 하나님이다. 내가 아무리 맞다 생각해도 말씀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물론 말씀의 바른 해석과 바른 적용이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가 떳떳하게 동성애를 죄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묵인하고 있는 세상의 여러 병폐들과 관련된 죄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힘있는 목소리로 외쳐야 한다.
물질만능에 대해서는 묵인하면서, 음란에 대해서는 묵인하면서, 오히려 교회 안에서는 그것을 자행하면서, 오직 동성애에 대해서만 큰 소리를 친다. 그럴때 세상은 니들이나 잘하라며 손가락질 한다. 당연한 결과다.
물론 교회가, 기독교가 잘 행한다고 해서 욕 먹는게 완전히 멈추진 않는다(구원과 진리에 대한 절대적 배타성 때문에). 그러나 욕을 먹되 의를 위하여 먹고, 고개 숙이지 않고 당당히 욕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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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대학교에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신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제 블로그에서는 제 전공과 관련한 것들을 포스팅합니다.

댓글 2 개

  1. 많이 공감합니다. 성경에 수많은 죄악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반드시 불못에 떨어진다고 적혀있는 특별한 죄악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동성애는 다른 죄악보다도 더 교회에서 특별취급을 한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저는 물질만능주의와 음란을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거절하도록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네마다 있는 노래방, 모텔, 그리고 하룻밤반 즐기고 헤어지는 나이트, 클럽이 더욱더 사람을 병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J모 방송국의 모방송은 이런 음란을 젊은이들에게 조장하는 방송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메세지가 일년에 몇번이나 나갈까요,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 보다 확실히 작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설교라는 말 자체에 가르침이란 말이 들어있는데, 교회에 출석해 있는 성도에게 어떤 메세지가 더 큰 가르침이 될런지 고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동성연애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에 더욱 경계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어요.

    성의 경계를 허문 것이 동성연애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누군가는 “성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할 수 있지요.

    성경을 제외하고 “문란하다.” 의 기준은 사회의 분위기 등에 따라 변할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변할 수 있는 기준에 따르면 동성연애도 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할 극히 평범한 관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성간의 휘발성적인 성관계 등을 본 사람이라면 이런 연애관계가 평범하다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성 문란의 마지막 경계 즘이 동성간의 연애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얘기이지만 보안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보안을 잘해도 한쪽이 무너지면 허사가 되는 것을요.

    교계가 거짓말도 많이 하고, 물질주의가 되어가고, 성적으로도 많이 음란해있어도 동성연애만큼은 인정하지 않는 이유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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